한 때 서울 성동구 마장동은 중대형 합성수지 대리점 및 중간판매상(딜러) 사무실이 30~40곳에 달해 ´플라스틱 중간재·완제품 단지´를 형성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3년전부터 경기도 포천과 남양주 등으로 터를 옮겼다. 현재 마장동에는 대기업 제품을 취급하는 직영대리점 4~5곳만 남았다. 수도권 건물 임대료 급등과 화학제품 물류기반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각종산업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석유화학산업은 실물경기 호황과 불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국내 순수석유화학 대표기업인 호남석유화학은 설립이래 처음으로 지난 2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그만큼 화학산업이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는 방증이다. 화학산업중에서도 합성수지(플라스틱) 부문은 실물경기가 즉시 반영되는 기초산업에 속한다.
지난 25일 서울 마장동과 경기도 포천 및 남양주를 찾아 내수 합성수지 시장을 들여다봤다.
마장동에 사무실을 두고 남양주에 물류센타를 운영중인 S사(딜러)는 대기업이 생산하는 PE(폴리에틸렌)·PP(폴리프로필렌) 등을 판매하는 중견 대리점 중 하나다. S사는 올해 상반기 70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률 2~3% 수준을 나타냈다. 작년 상반기 대비 20% 정도 급감한 실적이다.
S사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6개월째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뿐만아니라 동종 합성수지 업계 대부분은 현재 그야말로 ´버티기´에 돌입했다. 3분기에도 지금과 상황이 같다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 포천시 소재 중소화학업체 공장 입구. 직원 모집 플랫카드가 눈에 띈다.
이어 찾은 곳은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소재 ´신아PP´. 이 업체는 PP를 가공해 서류파일 등 문구류를 생산하고 있다. 5~6명의 직원을 두고 지난해 월 1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 들어서는 매출과 이익이 20~30% 정도 줄었다.
신아PP 이규환 대표(42)는 "7년 정도 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올해가 가장 어렵다. 주력품목인 문구류보다 이웃 업체의 경우 합성수지로 만든 부채가 더 팔릴 정도다. 9월부터는 시황이 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냥 기대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규환 대표는 시황도 어렵지만 직원 구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3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지만, 이도 여의치 않아 회사입구에 직원채용 플랫카드를 걸어놨다.
이 대표는 "외국인 직원 채용하기는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다. 우리같은 소규모 업체들은 시황에 흔들리고 직원 구하기도 어려워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 경기도 남양주 소재 합성수지 물류창고. 전년대비 거래량이 30% 정도 줄었다는게 관계자 설명이다.
서울 마장동에 사무실을 두고 포천 인근 합성수지 업체들과 주로 거래하는 동명폴리머 양희석 대표를 남양주 탐방 중 우연히 만났다. 그는 이 분야에 20년 넘게 종사한 배테랑이다. 양 대표 역시 앞서 만난 합성수지 업계 사람들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 대표는 "올해 상반기에는 전년대비 매출액이 30% 정도 줄었다. 그나마 LG화학의 ABS와 효성의 PP 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용 기능성 제품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타격을 덜 입은 편이다. 합성수지사업 시황 악화는 연말까지 갈 것 같다"고 말했다.
▲ 전원테크 이재전 대표.
앞서 방문한 업체들과 다르게 ´위기를 기회로´ 만든 회사도 있었다. 남양주 와부읍에서 25년째 공장을 가동중인 ´전원테크´는 찜통더위 속에도 50여명의 전직원이 생산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이 회사는 합성수지 원재료를 구매해 가정용 플라스틱 수납장과 유아용품 등 200여 가지의 생활용품을 만드는 업체다. 제품 디자인-금형-사출-생산-판매까지 모두 직접한다.
전원테크 이재전 대표는 "다른 회사들이 한 분야에 집중하는 반면 제품 디자인부터 판매까지 총괄하기 때문에 시장 상황 악화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작년 상반기 매출보다 올 상반기에 매출이 2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전원테크와 유사한 인근 회사 두 곳은 최근 문을 닫았다. 대형 마트에 의존했기 때문에 출혈경쟁을 하다가 자멸했다. 우리는 대형 마트에 의존하지 않고 G마켓 등 온라인을 활용한 마케팅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원테크의 경우처럼 이익이 증가하는 회사는 아주 드물다는게 업계의 진단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앞서 방문한 회사들처럼 이익 급감으로 언제 무너지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합성수지 원료를 공급하는 대기업들도 중국 수출이 무너지자 이익이 반토막 나거나 적자로 돌아섰다. 중간판매상들과 대리점들 역시 경영상 어려움으로 직원 구조조정을 고민할 정도다.
합성수지 대리점 D사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 수요 감소가 동시에 오다보니 대부문의 중소업체들은 손 쓸 방법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동반성장이나 상생협력은 의미가 없다. 단지 경기 회복을 기다릴 뿐..."이라고 말을 흐렸다.